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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여행을 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장돌뱅이처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방학이면 내 몸뚱아리만한 배낭하나 메고 베트남으로, 일본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별똥별과 반딧불에 둘러쌓인 여름날들을 보냈다.

대학시절 내내, 나는 한 곳에 절대 정착하지 못하리라, 개목줄같은 사원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미래를 그리지 못했다. 어디 소속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2013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왔고 나는 더이상 자유를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근 1년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 다만 방향성이 있는 자유였다.

그러다 나는 가장 한국적인 회사의 사원증을 받게 됐고 처음 몇개월간 진통을 겪은 뒤 이제는 그 회사의 진짜 일원이 됐다.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후 떠난 첫 여행.


그 어떤 새로운 음식도, 그 어떤 새로운 장소도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도쿄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 그 'ならでは’(~에서만) 라는 단어가 줬던 감동이 더이상 없다.

그곳의 희소성, 특수성에 부여하는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사람이 변한다.

그렇게 중요했던 나의 자유와 권리는 어느덧 희석되고 이제는 관계, 명예가 점점 그 자리를 차지해간다.


변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더욱더 미래를 세우기 어려워진다. 어딘가에 소속돼서 살아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이다. 새삼스럽게 '인생에는 연습게임이 없다'는 아주 창피한 문구가 생각난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하다.

미래라는 뜬구름을 잡아보려고하니 오히려 내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미래를 잡지 말든가 내가 붕 뜨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