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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volous, Fabolous

<영화> 빅쇼트

별 다섯개가 만점이라면 일곱개를 주겠다. 매우 주관적이다.

현학적인 성품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봐야 한다. 다만, 금융권 지식은 어느 정도 갖고 가자.

CGV 앱에 누군가 남긴 평을 보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가장 쉽게 설명한 영화'라고 한다. 쉬운 건 맞다. 다시 말하지만 금융 지식이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는 전제에서다.



영화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대상으로 공매도(short)를 친다는 얘기다. 2005년부터 2009년초까지 일련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는 과정을 이면에서 그린다.

계속되는 부동산 호황에 월가와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이들은 스트립바를 전전했다.

 $3.5의 맥주 대신 샴페인과 후커들을 찾는 월가의 사기꾼들이 이 영화의 악역이다.

자극은 인간의 뇌를 마비시킨다. 

그들이 돈과 자극이 주는 쾌락에 취한 동안 세상을 비뚤게 보는, 성경 용어로 하자면 '좁은 길을 가는' 이들은 진실을 봤다.

천재 의사이자 펀드매니저, 한쪽 눈을 잃은 드러머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부채담보부채권(CDO)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채권을 하나씩 뜯어본다. 모두 '똥'이다. 

※부채담보부증권(CDO)

-다수의 채권을 담보로 또 다른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주택 모기지(대출)의 경우,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채권을 발행한다. 집 값을 내지 않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은행들은 쉽게 발행한다. 이 때 채무자의 신용에 따라 채권 등급이 결정된다. 이 같은 채권을 수십개 모아 또 다른 채권을 발행한다. 쉽게 말해, 옆집 순이, 철수, 짱구, 흰둥이 등등이 집을 빌리면서 발행한 채권을 싹 모아 하나의 채권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신용 등급을 매기는 논리는? 이들 중 한명이 채무 상환을 지연하더라도 다른 애들이 다 갚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에 근거한다.


버리는 이 주택 시장에 공매도를 치는 상품을 만들어달라고 글로벌 투자은행(IB)들에 주문한다. 도이치방크,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JP모건 등등.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 등등 모두 이 CDO가 모두 똥이란 걸 발견한다.

아무도 그들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 미국 증권선물위원회(SEC) 행사, CDO 매니저를 찾아가봐도 모두 한결같다. '주택 시장은 망하지 않아. 우리가 왜 이걸 뜯어봐야하지?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SEC 감독 위원은 골드만삭스에 취업하겠다고 다리를 벌리고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직원은 무디스에 손님을 빼앗길까봐 똥 채권에 무조건 투자등급을 부여한다. 

주택시장이 포화되고 성실히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은행은 집도 절도 없는 스트리퍼, 이민자, 하층민들에게도 대출을 주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닌자 대출이라고 나오는 단어가 이 뜻이다. 노 인컴 노 잡.(No Income No Job)

근데 이걸 모으니까 '이 중 한명은 갚겠지'란 낙관론으로 포장된다. CDO는 급속히 증가하고 금융기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들인다. BBB, BB, B에서 A, AA까지. AA는 BBB 수십개 수백개가 모여 만든 BB를 또다시 수십개 수백개 모으고 이를 또 다시 모아 만든 B를 또...또... 나열하기도 힘들다. 그런 복잡한 젱가다.

생각보다 금융맨들은 단순하다.

복잡한 걸 딱 하나로 좋게 포장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수익만 잘 나면 된다'는 게 많은 이들의 철학이다. 월가도, 여의도도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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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에 마비된 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영화다.

마이클을 비롯해 마크, 벤 모두 월가 문화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남들 모두 누리는 쾌락에 취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기민하게 발로 뛰고 머리를 써 제도에 반(反)하는 전략을 썼다. 제대로 먹혔다.

금융권은 아니지만 한국의 월가를 들쑤셔야만하는 나에게.

그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같이 놀면 된다. 그래서 취하고 마신다. 그 사이에 나의 뉴런 역시 마비돼 간다. 그 와중에 분별력을 잃지 않기도 어렵다. 

잠깐 그 분별력을 잃었던 적도 있지만, 다시 '나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이 의미있다.

브라운홀인지 뭔지, 뜨내기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두명이 월스트리트저널에 일하는 기자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 기자가 했던 말이 콱. 마음에 박힌다.


"내가 월가 사람들하고 친해지는 데에 수년이 걸렸어. 근데 그 명예를 지금 포기하라고?"


명예를 포기하더라도 진실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뇌가 술에 마비되기 전에 술판을 떠나자 차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