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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Culturenomics

It Place! 가회동

It bag, It shoes를 추종하는 평범한 여대생 김경림의 친구들에게 물어 봤다.

"데이트할 때 어디가?"



"학교에서 만나는데……."

"신촌이지 뭐."

"강남이나 압구정?"

학교, 집 근처, 강남같은 번화가 등의 예상했던 대답과 함께 상당한 수를 차지하며 나오는 곳이 있다. 예전에는 "신경 쓴 데이트 코스"였던 인사동이 이제는 굉장히 일반적인 데이트 코스가 되었더라. 한국의 맛이 사는 거리와 구경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삼청동쪽으로 좀 더 걷다보면 패션잡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테라스가 예쁜 카페들. 많은 외국 관광객들도 "Good for dating" 이라고 평가하는 곳이 바로 인사동과 삼청동 일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회동은?

인사동과 삼청동을 산책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가회동을 밟았을 것이다. 북촌으로도 더 유명한 이곳은 왕족과 양반은 물론이거니와 손병희, 박규수, 박영효 등 근현대사에서 유명한 인물들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역사 속의 uptown이라고 할 수도. 그리고 좀 더 북쪽으로 가면 근현대사에서 꼭 언급되는 "경성 방직 주식회사"의 김성수가 세운 중앙고등학교가 있다.

역사가 오래된 동네인 만큼, 강남이나 코엑스 혹은 신촌처럼 젊은이들의 거리가 아니라 4~50대 이상의 중년 부부들도 주말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자주 찾는 데이트 코스라고 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삼청동 길의 한 카페>

[아빠 어릴 적에는...]


"예전엔 여기가 이렇지 않았어요. 저 쪽에 몇 칸이더라, 아무튼 커다란 한옥이 한 채 있었고 그 뒤로 쭉 걷다 보면 중앙고가 있죠. 이맘때쯤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정말 예뻤는데……. 학교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좋아요. 그 때는 학교 밖으로는 정말 놀 게 없었어요. 매일 야자 전에 축구만 하곤 했죠. 지금 같은 상권은……. 어휴 그 때랑 비교도 안되요. 그 땐 그냥 주택가였다고요."

지난 4월 5일,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고 봄꽃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말 그대로 살랑살랑 부는 전형적이어서 특별한 봄날. 가회동 한옥 골목을 거닐던 한 서글서글한 눈의 김홍제씨의 대답이다. 가회동에 관한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모교가 이 근처라서 추억이나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다만 여기가 예전 같지 않다며 재미있어하기도, 한편 아쉬워하기도 하는 기색이다.

그는 모처럼 맞는 따스한 주말에, 벌써 28년째 동고동락 중인 부인과, 대학교 CC 시절부터 즐겨 찾던 삼청동을 방문했다. 점심은 아내가 좋아했던 수제비를 먹고, 맞은편에 새로 생긴 한 카페에서 그가 주문한 것은 딸이 추천해준 와플과 아메리카노. 이제 훌쩍 큰 아이들은 각자 주말을 즐기러 나가고, 간만의 데이트라 더욱 신경 쓴 듯하다.

"그 때 데이트 코스라고는……. 경복궁이나 창경궁을 거니는 게 고작이었어요. 아, 제가 졸업한 중앙고등학교도 가곤 했죠. 이런 외국식 카페는 상상도 못하죠. 아 삼청동은 당시에 (70년대 중후반) 성공적인 데이트 코스였어요. 왜냐고요? 수풀이 많아서 은밀한 데이트가 보장되었거든요. (하하) 디자인에는 문외한이지만 지금 삼청동은 무슨 일본의 카페 거리 같아요.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도 많고……. 낯선 거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내가 첫 애를 가질 때 즈음이었나. 그 때부터 자주 가곤하던 수제비 집이 아직 반겨주네요. "

현재의 삼청동이 너무 낯설다는 75학번의 이들 부부는, 이제 대학교 3학년인 딸이 추천해준 와플을 계속 먹으면서 말을 이었다.

"집 근처에서도 이런 걸 (와플, 커피 등) 그래도 꽤 또래에 비해 자주 먹는 편이지만 이게 또 느낌이 달라요. 여긴 수풀이었다니까요. 집 근처야 뭐 새로 생긴 동네니까 당연히 이런 게 많고, 젊은 시절 추억도 없으니까 어색하지 않은데……."

입 안에 계속 와플을 넣으며, 결혼 전까지 이 근방에 사셨다는 김홍제씨가 이 근방은 손 안에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인사동은 그때가 훨씬 민속적이고 정감 있었어요. 그 때는 뭐랄까 좀 더 묵향이 나는 거리였다고 해야 하나, 물론 지금처럼 거리가 조성되어있지만 지금이 훨씬 관광화되었죠. 뭐 국가 정책적인 결과지만. 성공적이죠. 무엇보다 접근성도 좋고, 서울 시민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지역이잖아요? 개인적으로 강남이나 청담, 압구정보다 훨씬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가회동은 또 말이 달라지죠. 가회동은 그냥 고급 주택가였어요. 굳이 발 들일 일도 없고, 99칸짜리 한옥도 있는 정말 고급 주택가였죠."

삼청동과 인사동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던 가회동이 드디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가회동의 한옥 마을을 정책적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새삼스럽게 정책이냐 아니냐를 따져야 아나요. (하하) 한동안 우리의 한옥이 없어지는 듯해서, 게다가 여긴(가회동, 북촌)은 왕족과 귀족이 살던 동네인데....... 이를 지금이라도 보존하고자 나라에서 노력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까 삼청동의 카페들이 낯설다고 했죠? 마찬가지에요. 이곳을 전통문화 특구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북촌의 한옥을 보존하듯 좀 더 한국적인 것을 살려야하지 않을까요. 전통 음식 식당, 전통차 카페같은게 더 늘어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We are heading for Gahoedong]

북촌 관광안내소에서 자전거를 대여*하여 여기 저기 취재를 다니던 중, 웬 낯선 언어가 들렸다.

"Hey miss, excuse me?"

뒤돌아보니 한 백인 남성과 동양인 여성이 불러 세우더라. 이 근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소녀(?)는 처음 봤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 흔쾌히 승낙. 외국인만 보면 입이 근질근질한지라, 게다가 컬처노믹스 넷포터에게 좋은 interviewee라고 생각한지라, 마음속으로 신난다고 외치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런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찍어준 이시가와씨에게 감사^^...>

미국인 던컨씨와 일본인 이시가와씨가 향하는 곳은 북촌 한옥 지구. 그러나 그들과 만난 곳은 한옥 지역과는 삼청동길 한 중간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관광안내소 직원이 길을 잘못 알려줬다더라. 마침 한옥마을 취재가던 길이라 함께 동행을 권했더니 의심도 없이 순순히 갈 길을 맡겼다.

"Gosh, so beautiful!"

서양인들이 아무리 동양의 미에 환상이 있다고 하지만, 던컨씨의 반응은 의외였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도쿄에 살며 이런 전통 가옥은 많이 봤을텐데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가옥은 일본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한다. 뭐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는 먼저 담장이 비교적 깔끔하게 이어진다며 칭찬했다. 색 조화도 세가지 이상 섞이지 않는 다며 색이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그가 찍어준 가회동 사진을 구경하자.



가회동은 한국 사람들도 비교적 잘 찾아 오는 곳이 아니줄 알고 있다는 말에, 그 부부는 놀라며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외국인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참 즐겨쓰는 것같다.) 동네를 왜 오지 않냐며, 이런 전통 가옥이 동네마다 있어서 오지 않는거냐고 물었다.


그렇다. 왜 커다란 카메라의 소지자들만 이 곳을 방문하는 것인가?!



[Tips! 가회동을 아십니까]

앞서 언급했지만, 가회동은 유명하다. 그러나 삼청동과 인사동에 묻혀서 사람들이 비교적 자주 밟아 주는 땅은 아니다. 서울시에서는 역사가 깊은 왕과 양반의 마을 가회동의 전통적인 광경을 보존코자, 지난 2007년 12월부터 "북촌 제1종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정책적 목적으로 북촌의 한옥은 독특한 경관을 회복했고, 현재는 갖가지 홍보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고 있다.

가회동의 묘미를 꼽자고 하면,

첫째. 교과서에서 보던,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정말 만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집, 혹은 생가가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만나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집터, 박규수의 친척 박영효 집터, 사육신 중 한명인 성삼문 집터, 대한제국 시기 서구 의학을 도입하여 만든 광혜원 터 등 우리가 책으로만 보던 지식들을 퍼즐조각 맞추듯 찾아보는 매력이 있다.

                        <가회동의 근현대사 퍼즐'▽'/>


두번째! 가회동에는 자전거가 있다.

위에서 본 사진의 자전거는 안국역 2번출구에서 쭉 직진하면 보이는 북촌 관광안내센터에서 대여 가능한 것이다. 공원에서 빌리는 자전거가 얼마정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격을 들으면 당신은 눈이 번뜩 뜨일지도 모르겠다.

세 시간에 단돈 오백원!!

본인의 신분증을 맡기면 세시간동안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대여비는 오백원밖에 하지 않는다. 세시간동안 카페에 들어가서 한잔에 오천원정도 하는 커피를 시키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몸에도 마음에도 훨씬 즐겁지 않을까?


셋,  역시나 한옥!

서울은 어느 나라인가? 서울 어느 곳에서도 이 근방만큼 한국냄새나는 곳은 드물다. 하물며 삼청동도 국적 불명의 카페가, 예쁘지만 한국냄새는 그닥 나지 않는 카페들이 즐비해있다. 그러나 가회동은 한국의 길이다. 담장부터 마당에서 비죽 삐져나온 목련꽃이며 따뜻한 색의 나무문은 그 길을 따라 걷는 관광객의 마음도 한결 차분하게 해준다. 게다가 곳곳에 숨어 있는 갤러리, 박물관 등은 한옥길 산책을 좀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어떤 소비재이든지 소비자가 없으면 그것은 가치가 떨어진다. 가회동이라는 수 백년된 아름다운 문화재가 있더라도 그것을 서울 시민들이 소비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컬처노믹스란 바로 이런 맥락이 아닐까. 정책적 단위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시민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데이트 코스이든, 가족들과의 나들이든 간에, 찾아 오는 서울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이곳이 성공적인 문화재 정책의 산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국 컬처노믹스란 시민이라는 사회의 작은 난쟁이들과 문화 정책간의 쌍방향적 교류이다. 우리가 이를 알아주고 소비할 때, 그것이 서울의 한 문화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며 이는 던컨씨와 이시가와씨 같은 세계인들을 서울로 불러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