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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と言えば、(allaboutme)

한.번.

1.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weave라는 동사를 사용한 구절이 있다.
즉, 조물주가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우리는 한올 한올 잘 짜여진 삶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믿음 아래에서 나의 정신적 삶은 보다 윤택하다.

예컨대 그 어떤 실패가 와도, 거기에서 교훈을 찾고 발판으로 삼으며
좌절하거나, 스스로에게 낙심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최대한의 인간적 노력을 다했을 때'라는 전제가 있다. 이 전제 없이 결과에 항상 저런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한량이다-

무려 2년만에 블로그를 다시 찾은 이유는 첫번째는 타인의 요구에 의해서이요
두번째는 그간의 성장을 볼 수 있을까하는 소박한 희망에 의해서이다.

2.
두 번째.

과연 나는 성장했을까?

2009년과 2011년.

계량화될 수 있는 능력적 측면에서,
어학능력이 크게 성장했고
사회인이 될 수 있는 많은 것을 구비했다
-그러나 나는 사회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わがまま였던 나는 술마실때만 그 본성을 드러내는 지킬박사가 되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현실주의자가 되고 있다.


3.
다른 이야기.

사실 서두에 성경 구절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이 블로그에 녹아 있는 그에 대한 추억이다.

물론 그는 나의 이런 추억을 알지도 못하고 아마 나는 그의 물고기 중 한마리였을것이라 생각한다.


유달리 감성적이였던 그는 분명 처음부터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이제와 확인해보니 나의 모든 기록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고
당시 그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작은 금붕어였다.

모든 것은 짜여져있다.

내가 그를 만난 것. 그리고 그 때 사실 나는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는 것.
그는 그것을 모른 것. 그리고 결국 안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옆에 있던 것.


그러다 결국 서로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현해탄 너머에 있었다.

그의 실 한올이 어떻게 나를 짜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도 역시 여전히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또 다른 weave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4. 또 다른 weave

일본에서 돌아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강요되는 등산 모임이 있었다.
8월 말엽, 땅을 식히는 장대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나를 그리도 아껴주던 친구가 방한을 한다.
두 가지의 그럴싸한 변명을 다시 미화하여 등산 모임측에 전달하고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꽤나 짧은 치마였는데도 치맛자락이 흥건히 젖었다.
친구는 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같이 온다던 한국인 친구는 생면부지.

날씨란 사람의 마음을 참으로 잘 움직인다.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춰 눈에 보이는 PC방에 들어가서
그 한국인 친구의 이름을 온갖 SNS 사이트에서 검색했고
결국 그의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되었다.


마침내 만나게 된 그와 함께 있던 그 친구.

그 '마침내 만나게 된 그'가 지금 나의 미친 사랑의 병인(病因)이다.



무엇이 weave되었는가?

이야기는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처음으로 일본의 그 곳을 알게 되었다.
2009년. 많은 선택항 중에 그 때 뇌에 남아있던 그 학교를 선택했다.
2010년. 수많은 행복과 반딧불의 추억들. 그는 그 학교에서 2009년에 수학했다.
2010년 8월. 공통의 친구를 통해 결국 우린 만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그 학교에 2009년에 갔다면? 그를 만났겠지만 절대 연인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리라 장담한다.

내가 만약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만약 다른 학교를 선택했더라면?

더 오래 전으로는
만약 나의 어머니가 12살된 딸을 억지로 일본어 학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만약 당신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주재원을 갈 일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과연 지금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5.
어떤 믿음을 갖고 말해도 좋다.

인연이란 경이롭고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