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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n D.C.

참 미국스러운 델리(Deli)

Central Park, NY

Retrieved from: http://culture.wnyc.org/articles/features/2011/jun/01/nyc-parks-picnics-birdwatching-biking-five-boroughs/


미국 오피스타운의 점심시간이 되면, 이곳 저곳에서 하얀 일회용 도시락 용기 또는 투명한 샐러드 용기를 들고 다니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까운 식당으로 행하는 한국의 오피스타운과 달리, 미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테이크 아웃한 음식 또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잔디밭 또는 벤치에 앉아 선글라스 끼고 점심을 먹는 외국인들의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여유가 느껴지는 이 광경의 한 주역은 소위 "델리(Deli)"라고 불리는 간이 부페 식당이 있다.

델리(Deli)는 미국 오피스 타운 어딜가도, 한 건물에 하나 이상은 꼭 보이는 참으로 편리한 '먹을 곳'이다. 파는 음식은 대체로 샐러드, 샌드위치, 베이글, 머핀, 스낵류가 주를 이루고, 주인이 어느 나라 계통이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즉, 기본적으로 미국적인 음식들을 베이스로 거기에 가게주인의 특징에 따라 그 가게 메뉴가 차별화된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그리스사람이 하는 델리는 지중해식 샐러드와 Pita, Gyros(그리스식 wrap 샌드위치)가 있고, 한국사람이 하는 델리에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잡채, 김밥 등이 보인다.

http://www.jacksfresh.com/lbs.html출처: http://www.jacksfresh.com/lbs.html

이러한 델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신선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델리에서 파는 음식들은 그날 그날 새로 만들고, 눈에 보이는 곳에서 진열, 판매한다. 즉, 소비자가 음식의 상태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샌드위치같은 경우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안에 들어가는 패티도 그 자리에서 굽기 때문에 미각적으로도 더욱 만족감을 준다.

 

 델리라는 말은 Delicious에서 유래했다기 보단, 독일의 "Delicatessen"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래 의미는 "특별히 준비된 음식"이라는 뜻으로, "Deli"라는 말은 현재 미국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사용된다. 다만 미국에서 볼 수 있는 Deli의 형태는 이 나라에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경우 Deli란 치즈나 햄 같은 음식을 파는 식재료점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 Jack's Fresh)

 

점심시간의 델리는 참으로 복작댄다. 여유 넘치는 잔디밭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사기도하고, 간편하게 부페스타일로 먹고 싶은 것을 담아서 무게를 잰 뒤, 계산하고 여유를 찾아 돌아가기도 한다. 주문을 기다릴 필요도, 자리가 없다고 투덜댈 필요도 없다. 참으로 '간편하다.'

미국 사람들은 정말 간편한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국민성은 이미 수십년 전에 그들만의 '패스트푸드'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국사람들이 간편하게 즐긴다고 생각하는 맥도날드나 버거킹은 더 이상 설 곳을 잃었다. 현재 미국에서의 패스트 푸드란,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이 끼니를 채우기 위해 가는 곳, 혹은 '정말로' 정크푸드를 먹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최근의 트렌드는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드는" 간편한 음식인데, 대표적인 체인으로는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서브웨이(Subway) 샌드위치, 시카고에서 시작된 팟벨리(Potbelly) 샌드위치, 먹음직한 크기로 샐러드를 잘라주는 "Chop't" 샐러드바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체인점보다 더욱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곳이 바로 "델리"이다.

간편함과 동시에 델리는 상대적으로 싸다. 일반적으로 워싱턴 D.C.에서 점심 한끼 먹으면 $15는 보통이다. 그런데 델리는 자기가 먹을 양의 '무게'를 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많이 나오는 경우는 $10. 이미 고정된 가격의 샌드위치나 오믈렛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고 해도 $10을 넘지 않는다. 여기서 미국 사람들의 경제적 합리성을 다시 읽을 수 있다.



[Greek Deli- 저 모든 것이 약 $10]

또 하나 재밌는 점은, 델리 메뉴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단련한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 사람만큼 건강에 예민한 사람들도 없다. 어떤 음식을 골라도, 슈퍼마켓에서 어떤 식재료를 봐도 영양 성분표가 반드시 명시되어 있다. 글루텐이 없는 제품을 고르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식당에 가도 샐러드에 드레싱을 따로 마련할 것인지 섞을 것인지, 채식주의자용인지, 견과류에 알러지가 있는지 등을 모두 체크할 수 있다. 델리에서 볼 수 있는 건강 강박증은 이런 것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때깔 고운" 완성된 샐러드 메뉴를 놔두고, 직접 어린잎 시금치와 올리브 몇 개, 페타 치즈, 발사믹 드레싱을 뿌리고 계산대로 향한다. 총 칼로리는 200kcal이 될까 말까. 델리는 미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재생산한다.

계산이 끝난 음식을 들고 그들이 향하는 곳은 크게 두 곳이다. 자기 사무실, 또는 근처 공원. 사무실로 향하는 그대들은 개인주의의 표상이요, 공원으로 동료들과 행하는 그대들은 합리성의 표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섭식행위와 식문화는 비단 우리의 식욕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고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한편으로 자신이 먹는 음식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20~30대 여성들이 "꼭" 음식 사진을 SNS에 포스팅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공원으로 (혹은 다른 공공장소로) 동료들과 함께 가는 델리 소비자들은, 시간적, 가격적 합리성이라는 자신의 가치도 성취하고 이를 통한 사회적 욕구도 충족한다. 가히 일석 이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델리는 매우 미국스럽다. 그래서 요즘 나의 매일은 이 델리 저 델리 가보면서 미국을 느낀다는 핑계로싼 가격으로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는데 여념이 없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