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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volous, Fabolous

RIP to my first plant

RIP to my first plant

#.히멜리(북유럽의 기하학적 정팔각면체 모빌) 안에서 키우던 틸렌시아가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죽였다.
틸렌시아는 다육 식물이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키울 수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분무기를 뿌려주면 절대 죽지 않는다.
물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꼭꼭 챙겨줬고, 햇빛도 나름대로 잘 보이는 곳에 매달아 놓았다.
방법의 문제다.
다육 식물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물을 주면 두꺼운 잎 안에서 물이 고여 썩어버린다. 
분무기를 사고 싶지 않았던 나는 처음에는 물을 손에 묻혀 튀기다가, 나중에는 흠뻑 적신 뒤 다시 히멜리 안으로 넣어 놨다. 그게 틸렌시아 사망의 원인이었다.
오늘 아침 틸렌시아에 물을 주려고 히멜리에서 꺼내자 잎 하나하나가 흐물거렸다. '그냥 힘이 빠진 거겠지'라며 여느 때처럼 개수대로 가져갔다. 물을 좀 많이 먹였다 싶어서 탈탈 터는 순간, 나는 일본강점기 순경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목이 베인 조선인들의 모습을 본 느낌이었다. 툭, 툭 떨어져 내린 틸렌시아의 이파리. 그 무게감이 일본 순경의 칼에 맞아 내동댕이쳐진 누군가의 모가지 같았다.

#.3개월 겨우 살아보고 죽은 틸렌시아를 마포구 쓰레기봉투에 넣으며.
많은 관계는 속도와 방향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호감을 느끼지만 한 사람은 빠른 속도로 자신을 내보이고 '나는 이미 네 사람이야'라고 드러내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정부 부처의 주무관처럼 하나,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결재를 올려 마음을 연다. 
연 다음도 문제다. 한쪽은 이틀에 한 번, 분무기로 슬쩍 주는 사랑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은 때로는 주전자로, 때로는 아예 싱크대에서 콸콸 주는 사랑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썩게 한다. 누구 잘못도 아니지만 말이다.

#.분무기를 사야할까 고민된다.